히가시노 게이고, 그러나 어딘가 다른 이야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으레 그의 이름 앞에서 짜릿한 미스터리와 숨 막히는 반전을 기대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 『편지』는 제가 기대했던 장르적 쾌감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충격과 무게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처음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작품들만큼의 속도감이나 재미를 느끼지 못해 ‘나는 별로였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난 지금, 저는 이 책이야말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의 명성을 걸고 우리 사회에 던진 가장 무겁고도 중요한 질문을 담은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범인을 찾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범인은 처음부터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범인이 잡힌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고통스럽고도 처절한 기록입니다. 이 글은 단순히 책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 『편지』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편견, 그리고 ‘죄’라는 것이 과연 한 개인의 복역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벗을 수 없는 족쇄,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낙인
이야기는 가난하지만 우애 깊은 형제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며 동생의 학비와 생계를 책임지던 형. 그런 형의 유일한 희망이자 자랑이었던 동생. 그들의 평화는 형이 작업 중 허리를 다치면서 산산조각이 납니다. 동생을 대학에 보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 하나로, 형은 과거 일했던 부유한 노인의 집에 돈을 훔치러 들어가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그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노인을 살해하고 맙니다.
형은 ‘강도 살인범’이라는 이름으로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법적인 처벌은 형 혼자만의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처벌은, 아무런 죄가 없는 동생의 삶을 송두리째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어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낙인은 그가 가는 모든 곳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집니다.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는 그를 불편해하는 시선 때문에 쫓겨나기 일쑤였고, 밴드 활동을 통해 재능을 인정받고 꿈에 그리던 데뷔를 앞두었을 때도, 형의 과거가 밝혀지자 다른 멤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꿈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부잣집 딸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녀의 부모는 ‘살인자의 동생’을 사위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들의 관계를 무참히 끊어버립니다. 어렵게 취직한 회사에서는 과거의 사건과 무관한 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범죄자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부당한 부서 이동을 강요당합니다.
동생은 그저 성실하게,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발버둥 쳤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회는 그에게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네가 아무리 깨끗한들, 네 형이 살인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이 소설은 한 개인의 범죄가, 그와 연결된 가족의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파괴할 수 있는지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현실적으로 그려냅니다.
차별은 당연하다? 우리 안의 냉혹한 시선
동생이 부당한 처우로 회사를 그만두려 할 때, 그를 아끼던 회사의 사장은 이런 말을 건넵니다. “차별은 당연한 거야.” 이 말은 소설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잔인한 대사일 것입니다. 사장은 악의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생의 편에 서서 그를 지켜주려 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차별’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거스를 수 없는 자연법칙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차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바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단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거리를 두고, 그를 잠재적인 위험인물로 간주하며, 내 아이가 그와 어울리는 것을 꺼리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이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라고 합리화합니다. 우리는 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이웃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사람들의 합리적인 이기심이 모여, 한 개인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거대한 폭력이 되는 것입니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과연 저들과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당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살인자의 자녀’가 전학을 온다면, 당신은 아무런 편견 없이 그 아이를 대할 수 있는가? 『편지』는 우리 안에 숨겨진 위선과 마주하게 만드는 불편한 거울입니다.
내 가족의 눈물과 타인의 고통 사이
소설의 후반부, 동생은 자신을 묵묵히 지지해 준 한 여성과 결혼하여 딸을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립니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뿐, 사택에 사는 이웃들이 그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또다시 따돌림이 시작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와 어린 딸이 날치기 피해를 당해 딸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며칠 후, 날치기범의 부모가 집으로 찾아와 눈물로 사죄하지만, 동생은 그들을 차갑게 외면합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저는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모순을 목격했습니다. 평생을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차별을 받아온 그가, 정작 자신이 ‘피해자의 가족’이 되었을 때는 가해자의 가족에게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 인간은 ‘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한없이 관용적이고 이타적일 수 있지만, 그 울타리 밖에 있는 타인의 고통에는 지독할 정도로 냉정하고 무관심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생은 자신의 가족이 겪는 고통은 세상 그 무엇보다 크다고 느끼지만, 날치기범의 부모가 흘리는 눈물에서는 어떤 진심도 느끼지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자신의 상처가 가장 아프다고 믿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분노를 자아낸 형의 편지, 반성 없는 자의 자기연민
이 소설의 제목이 『편지』인 이유는, 교도소에 있는 형과 세상에 남겨진 동생을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체가 바로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생에게 매달 도착하는 형의 편지는 위로가 되기는커녕, 분노와 절망만을 안겨줍니다. 형의 편지에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속죄의식이 보이지 않습니다. 교도소 생활이 어떻고, 동생은 잘 지내는지 묻는 등, 마치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처럼 태평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심지어 형은 피해자의 유가족에게 사죄 편지를 보내면서, 그 편지에 동생의 안부를 묻는 내용을 버젓이 적어 보냅니다. 이는 피해자 가족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은 잔인한 행동입니다. 형은 자신의 행동이 동생의 삶을 얼마나 깊은 지옥으로 밀어 넣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그저 ‘동생을 위해’ 저지른 범죄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자신의 불행에만 빠져있는 자기연민의 화신일 뿐입니다.
마침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동생은 형에게 마지막 답장을 씁니다. 그동안 자신이 겪어야 했던 모든 차별과 고통, 스쳐 지나간 인연들과 무너져버린 꿈들, 그리고 이제는 인연을 끊고 싶다는 절규를 담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형은 바로 그 편지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빼앗은 것이 한 노인의 목숨만이 아니었음을, 사랑하는 동생의 인생 전부였음을 깨닫고 오열합니다.
진정한 죗값은 어디에서 치러야 하는가
범죄자는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는 것으로 법적인 죗값을 치릅니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사회가 낙인찍은 ‘주홍글씨’는 어디에서 지울 수 있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에 대한 진짜 죗값은 과연 어떻게 치를 수 있는가?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해 친절한 답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보라고, 이 무거운 질문을 사회 전체에 던져놓습니다. 저 역시 책을 덮고 한참 동안 ‘진정한 죗값’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속죄와 반성은, 가해자가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똑같은 피해를 당했을 때, 바로 그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복수를 정당화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이 동생의 절규가 담긴 마지막 편지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게 되었듯이, 우리의 공감 능력은 어쩌면 가장 이기적인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편지』는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 사회의 진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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